[피에타]김기덕 감독, 김수영과 닮았다. [서른살 기자]엉뚱한 비평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김수영 <김일성만세>-

 

이 시를 읽을 때면 김수영과 함께 김기덕 감독이 떠오른다. 그 이유는 '김일성만세'라는 금기어처럼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 터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덕'이란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 대다수 사람이 '불편하다'고 내뱉는 반응이 그러하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동물이 아니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김기덕은 '그래도 인간은 동물'이라고 외치니 불편할 수밖에.

 

특히 김기덕을 불편해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피에타> 및 몇몇 영화를 제외하곤 18편 영화 가운데 여성을 학대하고 가학적으로 대하지 않는 장면이 없다. <사마리아>, <나쁜남자>, <>, <파란대문>,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그 방식도 다양하다. 여성단체들은 김기덕을 향해 '남성우월주의'에 절어있는 대한민국 남성의 극단주의라고 비판한다. 여성들의 분노는 성을 사는 남성들의 시선처럼 여성을 바라보는 김기덕의 시선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김기덕이 엄마나 여자 친구에게 당한 성적학대가 트라우마로 남아 영화 속에서 복수를 하는 게 아닐까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김수영 알게 되면서 김기덕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김기덕의 영화와 그 속에 여성들 그리고 성에 대해 말이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남성은 여성을 비하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망나니지만 구원을 얻는 것은 여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김기덕에게 여성과 섹스란 어쩌면 사랑과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이라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자기성찰을 위해 만든 영화라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무슨 말이냐. 김기덕의 영화가 난해한 것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기덕은 시인과 닮았고, 그의 영화는 시와 닮았다.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시는 소설이나 희극처럼 단순한 문학 일반에 속하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시는 문학의 가능성이다. 형식도 모방하지 않고 내용도 모방하지 않아야 시가 된다. 그렇다 시는 글로 표현된 자유정신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시는 난해하단 인상이 든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일체 외적인 것으로부터 단절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니까 느끼고 욕망하고 생각하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인이 그렇듯이 김수영도 불친절하다. 시인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독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아니라 철저한 자기 이해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쓰고 싶었던 자신에게 철저한 글, 즉 시가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다른 장르의 글과 달리 시는 자신이니까 쓸 수 있는 글,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글이다. 시를 읽는 것은 당연히 나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속내와 그 삶을 읽는 것이다. 어떻게 타인의 속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김기덕 감독이 영화 속에 여성과 섹스가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가 성도착증, 사디즘, 마조히즘과 같은 정신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인 사랑과 그 사랑을 확인하는 매개가 섹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은 왜 저런 불편한 모습을 영화에 담을까하고 그를 외면했지만, 그는 외면하는 당신이 아닌 자신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시와 같이 난해한 김기덕 영화가 고국이 아닌 프랑스나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마도 이런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우리의 수준 차일 테다.

 

자신의 내면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더 중시여기며, 내 생각보다 주어진 틀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김기덕은 풀리지 않은 숙제다. 반면 자기내면을 성찰하는 데 익숙하고, 이를 통해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하는 데 익숙한 서양인들에게 김기덕 영화는 재밌는 프레젠테이션일 듯하다. 김기덕의 이야기가 옳고 그른지를 분간하기 전에 그의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교육을 통해 습득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김기덕이 그들에겐 불편하지 않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김기덕의 영화는 '한 편의 시'라고 정의하고 싶다. 영상과 이미지로 구현된 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텍스트가 아닌 시 말이다. 김수영이 당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처럼 김기덕도 우릴 불편하게 만든다. 김수영은 시를 통해 자기성찰을 시도했고, 김기덕도 그러하다. 둘은 그래서 예술가이며, 동시대인에게 사랑받기 힘든 존재들이다. 시대를 앞선 사람들인 셈이다.

 

ps. 나는 <피에타>를 보기 전 꼭 <아리랑>을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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